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
오늘은 꼼수를 좀 부려본다. 작년 이맘때쯤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살짝 고쳐서 가져왔다.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출근을 안 하는 기간에 시간이 남으니 유튜브를 보고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더 이상 독서를 시간 없어 못 한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되었다. 평소 좋아했으나 자주 보지 못했던 BTS 영상도 실컷 보고, 나중에 읽자고 미뤄 두었던 책들도 읽게 되었다. [몸과 인문학]을 비롯한 고미숙 박사의 책을 몇 권 주문했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라는 책으로 시작했다. 왜 그 책을 주문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2019년 가까운 지인 두 명이 갑작스럽게 50대 남편을 잃은 걸 보고 생각이 많아져 운명, 죽음과 같은 낱말이 들어간 책들이 내 눈에 들어온 듯하다.
당시 나는 딱 50세가 되었다. 인생 후반전을 눈앞에 두니 막살아 망가진 몸과 건강이 신경 쓰였다. 독서 모임을 같이 하던 친구가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선생의 [명리 심리학]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어 읽게 되었다. 거기에 고미숙 박사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연이어 읽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살던 음양오행과 명리, 주역에 다시 관심이 갔다. 결혼하기 전부터도 엄마가 불교방송국에서 생활역학을 배우시면서 해주신 말씀이 있어서 명리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정인, 정재, 편관 등 명리학 용어에 익숙해 있었다. 한의학과 건강에도 관심이 있던 나는 <김홍경의 동양의학>이라는 ebs 강의 시리즈를 보고 너무 수긍이 가고 흥미로워서 자연스레 음양오행, 주역에도 차례로 눈길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IMF로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주저앉게 된 상황이라 밥벌이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3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 인생 초년생이었던 내게 그런 깊이 있는 내용이 쉽지 않았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만족하고 모든 공부를 '은퇴할 무렵 시간이 날 때'라고 미뤄둔 터였다.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명리학에 대한 두 권의 책이 다시 궁금증을 유발해 유튜브로 명리학 강의를 찾아들었다. 점을 보듯 풀이하는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은 한자 어원 분석으로 시작해 완전히 학문적으로 접근을 했고, 비교적 젊은 강사들은 현대에 맞게 잘 해석해서 이해와 수긍이 잘 되도록 풀이를 했다. 나는 그중에 내 마음에 드는 몇 명의 강의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들었다. 그렇다고 명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려는 마음은 없었다. 명리학의 세계는 취미로 공부하기에는 그 깊이와 넓이가 내게는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사주 팔자"라고 하면 내 운명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인 "수행"과는 상반된 느낌이기에 안 믿고 싶었고, 안 믿는 척했다.
그런데,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사주에 있는 글자들의 특성을 배우다 보니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MBTI에서 말하는 '중재자(INFP)'의 성격과 명리학에서 말하는 중앙 '토'의 기질이 일치했다. (나는 무토戊土의 기질을 갖고 있다.) 나는 왜 남편 때문에 힘든지, 어째서 옛것과 동양 철학을 좋아하는지, 열등감 덩어리인 내가 가끔 보이는 그 거만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이 낳고 나서 한 10년을 어렵게 지낼 거라는 엄마의 말씀은 어떻게 맞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고 헷갈리는 존재인지 등에 대해 의문점들이 하나둘 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오오!', '아!', '이래서 그랬구나!'의 순간이 거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있었다. 나도 헷갈렸던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이쯤 되니 이제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거고, 운명은 거의 70-80% 이상이 정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내 사고 체계가 "기승전불교"에서 "기승전명리"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다 보니 명리학 고수들은 그 반대로 얘기를 했다. 내가 갖고 태어난 특성은 분명히 있지만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특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분명 내가 갖고 태어난 기질이나 에너지는 있지만 세상의 에너지는 계속 변화한다. 그 에너지의 흐름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내 길은 바뀐다. 물론 절대로 쉽지는 않다. 수행이 그렇듯 오랫동안 지녀온 내 습관이나 천성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운(運)은 움직이다, 운전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운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오는 것인데 내 상태와 반응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명리학이 다른 점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에너지가 상호작용하는 이치를 앎으로써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준비되어 있으면 행운을 잡을 수도, 불운을 어느 정도 피할 수도 있다. 아무 생각이 없거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운이 와도 좋은 운인줄 모르니 기회를 잡기도 어렵고 불운에는 대책 없이 당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어도 시절을 제대로 못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 또한 세상 돌아가는 이치, 즉 명리(命理)를 알면 시절을 파악할 수 있기에 내 뜻을 펼칠 수 있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기다리는 인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제행무상(諸行無常)과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 있다는 솔로몬의 지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지금 잘 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겸손할 수 있고, 지금 별 볼 일 없거나 절망적이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명리를 공부하면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나와 맞는 것, 맞지 않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 있는 것과 맞는 것은 잘 활용하고 내게 없는 것은 주변 환경과 시기(時期)를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얕은 수준에 띄엄띄엄이지만 오랫동안 불교를 가까이하며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해왔다. 석가모니도 법륜스님도 믿음은 자유이니 종교는 어떤 것을 가져도 좋지만 "수행"하는 사람이니 미혹되지는 말라 하셨다. 명리학을 두고 한 말씀은 아니지만, 명리학을 잘 몰랐을 때는 나 역시 사주팔자는 미신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에 이렇게 명리학을 계속 공부하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명리학 기초를 떼고 나니 알겠다. 명리와 주역은 선입견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명리학은 천 년 가까이 연구되어 온 학문이다. 주술적인 모양새 때문에 천대받기에는 그 심오함이 너무 아깝다. 명리가 미신으로 여겨지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천 년 가까이 이어져온 우리 인류의 지혜를 이해하기 쉽게 다듬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 관계를 이해하고 평안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 작업을 아직 "지식의 저주"에 걸리지 않은 이 초보가 해보면 어떨까 하고 이 블로그를 열었다.
명리학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데 아주 유용한 학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지고 더 정의로워질 거라고 믿는 마음, 그것이 내가 줄기차게 "만인(萬人)의 명리학자화(命理學者化)'를 부르짖는 이유다. 어려울 것, 없다.
[명리] - 강헌
아직 명리학 초보지만 나도 강헌 선생 말씀에 격하게 동의한다.